통영 세병관과 동피랑: 남은 건물과 지켜 낸 마을을 함께 보는 코스
세병관과 동피랑을 함께 보면 통영에서 건물과 마을이 살아남은 서로 다른 과정을 비교할 수 있다. 세병관은 통제영 건물 대부분이 사라진 가운데 남았고, 동피랑은 2007년 벽화 운동 뒤 꼭대기 집 3채를 제외한 나머지가 보전되었다.
통영이라는 지명은 삼도수군통제영을 줄여 부르던 말에서 비롯되었다. 도시의 이름이 군영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항구 뒤편 언덕까지 이어지는 통영의 풍경이 다르게 읽힌다. 이 코스는 이름이 시작된 자리인 세병관과, 철거 계획 앞에서 벽화로 되살아난 언덕 마을 동피랑을 하나의 동선으로 묶는다. 군사도시의 무게와 골목의 생기를 같은 날 나란히 보는 구성이다.
추천 동선
세병관과 통제영 터 → 동피랑 골목 → 동포루 순서는 역사의 흐름을 비교하기 위한 편집 제안이며, 검증된 보행 일정이 아니다. 동포루는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마지막 선택 지점으로 둔다. 언덕 이동이 부담되면 동포루를 제외하거나 방문지를 줄이는 편을 권한다. 다만 세병관만 선택해도 무장애 관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동피랑 주출입구의 단차, 휠체어 대여·장애인용 엘리베이터 없음이라는 안내만으로 전체 경로의 통행 가능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 이동 지원이 필요하다면 구간별 출입구·계단·우회로를 먼저 확인하자. 이동 거리와 시간, 경사도, 우회로의 접근성은 확인되지 않았다.
1. 세병관: 통제영의 중심 건물
국가유산포털에 따르면 통영 세병관은 국보로, 2002년 10월 14일에 지정되었으며 소재지는 경남 통영시 세병로 27(문화동), 시대는 17세기 초다. 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는 1963년 해체수리 때 종도리에서 발견된 상량문에 을사년(1605년) 1월에 짓기 시작해 그해 7월 14일 상량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전한다. 건물은 앞면 9칸, 옆면 5칸의 팔작지붕 목조 단층이며, 경복궁 경회루와 여수 진남관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가장 큰 건물에 속한다고 설명된다. 세병관이 속한 삼도수군통제영은 1603년 두룡포(현 통영시 문화동)에 터를 잡은 뒤 292년간 유지되었으나,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세병관을 제외한 건물 대부분이 사라졌다. 지금 눈앞의 넓은 마루와 큰 지붕이 더 귀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2. 동피랑마을: 철거 계획에서 벽화마을로
동피랑은 통영성 동쪽 언덕 아래에 자리한 마을로, 오래전부터 통영중앙시장과 통영항 부근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아온 곳이다. 통영시는 낡은 집을 철거하고 동포루를 복원해 공원을 조성하려 했고, 2007년 10월 시민단체 푸른통영21이 전국에서 벽화 그릴 사람을 모으면서 마을은 방향을 바꾸었다. 시도지사협의회 소식지에 따르면 18개 팀이 담벼락을 채웠고, 입소문이 퍼지자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꼭대기 집 3채만 허물고 나머지는 보전하게 되었다. ‘동피랑’은 ‘동쪽’에 벼랑이나 비탈을 뜻하는 통영 말이 합쳐진 이름이라고 설명된다.
3. 동포루: 골목 끝에서 만나는 강구안
동포루는 마을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이곳에 서면 강구안과 통영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고 소개된다. 2018년 소식지는 마을에 130개가 넘는 벽화가 있고, 담벼락과 대문 곳곳이 주민들이 사는 집과 맞닿아 있다고 전한다. 벽화는 격년 벽화축제로 새로 그려지기도 하므로, 책이나 사진에서 본 그림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기대하기보다 그날의 골목을 새로 읽는 편이 좋다.
방문 전에 챙길 것
한국관광공사 무장애 정보에는 동피랑마을의 주출입구에 단차가 있고 휠체어 대여와 장애인용 엘리베이터가 없다고 표시되어 있다. 언덕 골목을 걷는 코스이므로 신발과 이동 계획에 여유를 두자. 세병관은 국가유산 소재지가 통영시 세병로 27로 확인되며 관리 단체는 통영시다. 관람 시간과 요금, 벽화축제와 골목의 현재 모습은 자료가 쓰인 시점과 다를 수 있으니 방문 직전에 통영시 등 운영 주체의 안내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 이 글에서는 확인된 공식 자료가 없는 이동 거리와 소요 시간은 적지 않았다.
마치며
세병관의 넓은 마루와 동피랑의 좁은 골목은 크기도 성격도 전혀 다르지만, 둘 다 통영이 오래 지켜 온 시간의 결과다. 하나는 나라가 지은 건물이고 하나는 시민이 지켜 낸 마을이다. 두 곳을 이어 걷고 나면, 통영이라는 이름이 왜 지금까지 쓰이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방문 전 궁금한 점
세병관을 보면 삼도수군통제영 전체를 본 셈인가?
세병관은 삼도수군통제영에 속한 건물이지 통제영 전체와 같은 대상은 아니다. 통제영은 군영의 터와 여러 건물을 포함했고, 일제강점기를 지나며 세병관 외 대부분의 건물이 사라졌으므로 남은 건물과 군영의 범위를 구분해 보면 좋다.
동피랑은 벽화를 위해 새로 만든 마을인가?
동피랑은 시장과 항구 주변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며, 벽화를 위해 새로 조성한 공간이 아니다. 2007년 벽화 공모 뒤 철거 계획이 바뀌어 동포루 복원에 필요한 꼭대기 집 3채만 철거되고 나머지는 보전되었으므로 주민 생활공간으로 대하며 걸어야 한다.
동피랑에서 예전 사진 속 벽화를 그대로 볼 수 있나?
같은 벽화가 남아 있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2018년 자료는 격년 벽화축제에서 그림이 새로 그려지기도 한다고 설명하므로, 그 자료의 130여 개라는 수치나 예전 사진은 현재 전시 목록이 아니다.